“35세, 2012년”
“부끄러움을 아는 건 성장의 기본이 됐습니다.”
2012년 네오위즈 하한가 사태 이후 결
-15%가 아니어도 하한가일 수 있다는 걸 안 저는 정말 너무 부끄러웠어요.
취재팀으로 점프했다는 기쁨은 단 하루만에 물거품이 됐죠. 기본도 없는 놈이 기자를 한다고 설친 격이 된 겁니다.
편집장님은 "ㅇㅇ씨, 취재팀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다시 커뮤니티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라며 진지하게 말씀하셨죠.
저는 "편집장님. 저는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죽어라 극복해보겠습니다.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했고, 이렇게 저는 취재팀의 잡일꾼이 됐습니다.
게임사들은 '보도자료'라는 형태로 각 미디어에 기사를 실어달라고 메일을 보냅니다. 보통은 각 기업 담당 기자가 보도자료를 취사선택해서 웹에 표출합니다. 저는 이 100여개 기업의 보도자료 전담이 됐습니다. 뭘 알아야 기사를 쓸텐데 아는 게 없으니 기업이 보내온 자료를 적당히 손봐서 편집장님께 드리는 일(편집기에 올려둠)이었습니다(보통 기업이 보내는 자료는 미사여구가 많기 때문에 이를 일일히 손봐서 기사체로 바꿔야 합니다). 보도자료임에도 보통 3-4번 빠꾸 먹었고 최대 7번까지 빠꾸 먹었습니다.
취재 기사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게 했습니다. 보도자료만 3개월 이상 담당했어요. 사실 나가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자가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업체의 보도자료만 쓰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 수준을 아는 만큼 감사하고 기쁘게 이 일을 했습니다. 정말 수십개의 보도자료를 남들 다 퇴근한 다음에도 정리해서 올리고 올리고 했죠. 조금도 부끄럽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하다가 저는 큰 걸 깨달았거든요. 각 게임사들이 어떤 게임을 갖고 있는지, 명절이나 공휴일에는 어떤 이벤트를 하는지 각 기업체의 홍보 담당자는 누군지 등 게임 기자로서의 기본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100일 정도 하니까 대한민국 게임사를 싹 꿰겠더라고요.
“아무도 없는 밤 사무실.. 그곳에서 싹튼 기회”
2012년 하반기
아무도 없는 사무실은 저에게는 늘 기회였습니다. 남들이 놀 때, 저는 그만큼 성장하고 있었으니까요.
미디어는 기사를 쓰면 외부 업체들이 기사 수정을 요청하는 게 일상입니다. '아'와 '어'를 다르게 쓰면, 그거 왜 그렇게 쓰시냐 좀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거죠. 가끔은 기업체가 전화오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쓰기도 합니다. 엔씨소프트나 넥슨은 정말 자주 요청했어요. 기사 바꿔달라고요. 그런데 기사는 편집기에서만 가능한데, 그 편집기는 VPN을 쓰지 않는 한 회사 내에서만 접속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보통 편집장님들은 저처럼 컴맹이라 그런거 잘 못하세요. 그래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 처리해줘야 합니다. 거의 매일 밤마다 단체톡이 울렸어요. "넥슨이 이 기사 수정해달라고 하는데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라는 톡이었습니다. "편집장님 제가 있습니다" 저는 늘 가장 늦게 퇴근했으니까요. 그런데 매일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항상 제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냥 저에게 갠톡으로 "사무실 있지? 이것좀 바꿔라. 네가 송고해"라고 지시를 내리셨지요. 그렇게 한 달여가 지나자 구박이 덜해지셨습니다. ^^;;;
“편집장님이 쓰신 기사 전부를 프린트하다”
2012년 하반기
보도자료 작업을 하면서 아무도 없는 밤이면 저는 프린터를 대량으로 사용했습니다. --;; 편집장님의 전 근무지인 매경게임진(매경일보의 게임 미디어 자회사)에 가서 편집장님이 쓰신 모든 기사를 프린트했어요. 파일형 시험지철에 넣었고 약 1000여 장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그걸 성경처럼 가방에 넣고 당시 버스로 출퇴근하는 편도 40분~1시간 동안 형광펜으로 긋고 긋고 그으면서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우리 편집장님은 이렇게 인터뷰를 시작하는구나, 증권 기사는 이렇게 리드를 따시는구나.. 제목은 이럴 땐 이렇게 하시는구나.. 하면서요. 3개월간 매 출퇴근마다 읽고 긋고 했고요. 총 세 번 정도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 쯤 되자 보도자료 제목을 편집장님 스타일로 바꿔서 제출하기 시작했어요. "어? 야 이거 뭐야 왜 제목을 이렇게 해?" 라고 편집장님이 반쯤 놀라 물어보셨죠. "편집장님이 예전에 쓰셨던 기사 보고 참고했습니다...."라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씀 드렸어요.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편집장님이 "야 그거 내 저작권이야 따라하지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에는 혼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습니다.
002. 끝입니다 :) 003에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