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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2011년 10월”

3수생에, 12년간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고시낭인. 2011년. 34살 되던 해 10월이 돼서야 월급 100만원(세전)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사회생활. 저에게는 뒤가 없었어요.

천사같은 어머니와 아주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장남인 저는 어려서부터 꿈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해군 사관학교에 진학해 해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죠. 아버님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육사로 바뀌긴 했지만요. 하지만 간기능 이상으로 인해 육사 진학은 실패했고, 마찬가지로 아버님의 의지에 따라 대한민국의 검사를 목표로 매진했습니다. 결국은 실패했고요. 이런 저에게 "주식은 도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정관념에 고집센 청년. 주식은 제 인생에 존재하지 않던 선택지였어요.

35살이 다 돼서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저는 뒤가 없었습니다. 많은 나이에 비해 아무 경력도 없는 저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IMF로 집안이 다 망해서 혈연은 물론 학연, 지연도 저에게는 기댈 수 없는 선택지였죠.

“받아만 주시면 월급의 3~4배를 해내겠습니다.​

제발 시켜주세요.”

2011년 9월 게임조선 면접에서

어렵게 입사한 게임조선(정확한 사명은 디지틀조선게임)에서 저는 나이는 위에서 두 번째지만 직급은 제일 아래였습니다. 선후배가 엄격한 기자 사회에서 모두들 저는 오래 못 버틸 것으로 생각했죠. 두려웠습니다. 뒤가 없었죠. 100만원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긴 장수생(고시 공부를 오래한 사람을 일컫는 말) 뒤에 어렵게 시작한 사회 생활.... 고시 실패에 이어 사회생활까지 실패한다면 도저히 일어날 자신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면접 당시 면접관이었던 이OO팀장님(현재는 펄어비스에서 근무)도 "ㅇㅇ씨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 될 것 같아요. 기자 사회는 위계질서가 엄격한데.. 버티기 쉽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을 때 저는 "받아만 주시면 월급의 3~4배를 해내겠습니다. 제발 시켜주세요"라고 한 말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누구보다 빨리 출근하고, 누구보다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빠른 출근, 누구보다 늦은 퇴근

2011.10 ~ 2014.04 게임조선

저는 실제로 입사 후 단 하루도 뺴지 않고 가장 빨리 출근했습니다. 셔터 문을 올리고 출근했어요. 나중에는 제가 문 앞에서 문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본 관리 아저씨(종로구 디지틀조선게임 빌딩. 조선일보 빌딩과는 다르다. 먹자골목 쪽에 있음)가 나중에는 본인이 없어도 여는 방법을 알려주실 정도였습니다. 퇴근할 때는 마찬가지로 셔터문 제가 내리고 퇴근했고요. 주말 중 토요일은 100%에 가깝게 출근했습니다. 구정과 추석이 껴 있을 때만 쉬었어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취재팀 전보...

​그곳에서 시작된 주식

2012년 중순 게임조선

현재도 디지틀조선게임의 대표님이신 김봉현 대표님이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커뮤니티 기자였던 저를 취재팀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하신거죠(커뮤니티 기자란 게임 '리니지'를 예로 들자면 최고 레벨이 얼마고 공성전의 승자 길드를 기사화 하는 역할입니다. 취재 기자는 '리니지' 개발사 엔씨소프트의 실적 등 회사의 이슈를 취재하는 거고요).

 

지금도 그 날이 눈에 선합니다. 기자라는 직업도 제 인생에 선택지가 아니었지만, 취재 기자는 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어요. 하지만 저에게 '성장'이라는 목표는 '실패'를 아무리 감내해도 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15년 이상 늦은 출발선을 극복하려면 '도전'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음 이동한 취재팀. 그런데 그 날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그래서 눈에 선합니다. 하필 그날 네오위즈에서 서비스하던 '크로스파이어'를 스마일게이트에서 직접 서비스하겠다며, 계약 종료를 선언한 거죠. 네오위즈홀등스와 네오위즈(당시는 네오위즈게임즈)는 하한가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김상두 편집장님은 옮긴 당일 저에게 지시하셨죠.

 

"하한가 갔다는 속보 시황 기사를 써"라고요. 
 

“왜 이게 하한가지..? -15%가 아닌데??

2012년 하반기

저는 편집장님의 첫 지시였던 만큼 꼭 잘 쓰고 싶었습니다. 하한가를 기다렸어요.

당시 상하한가는 +15%, -15%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한시간이 지나도록 -15%가 안 오는 거에요. 선배 기자님들은 기사 쓰느라 정말 분주했습니다. 한시간 동안 저는 가만히 하한가를 기다렸어요.

 

그러더니 편집장님이 "야 ㅇㅇㅇ 기사 왜 안 올라와. 이게 어려워?????!!!!!" 소리를 지르셨죠. 그래서 저는 "편집장님 -15%가 아니어서요. 아직 -15%가 안됐습니다. -14.82%입니다"

 

....

그 다음 일은 안 보셔도 아시겠죠? 당시 저는 호가에서 -15%를 초과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몰랐던 겁니다. 단순하게 '기사는 팩트여야 한다'는 생각에 '아직 하한가에 가지 않았는데 -14.82%를 하한가로 쓰는 건 팩트가 아니라고 생각한거죠. 고지식한 법학도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끄러웠어요. 편집장님만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선배님들도 다 저보다 5-10살 어리셨거든요. '그 나이가 되도록 이런 것도 모르면서 취재 기사를 하려고 한다니...'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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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끝 :)

부와 지혜의 여정 이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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